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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ady I can't breathe when you're on my side I can't see you when you're near my sight But in night, in my bed when I'm alone I always think about you, I can't sleep well My Lady I don't know how I can be with you I don't know that I can touch your mind But in night, in my bed when I'm alone I always pray so that I can be better My Lady always is in my world She is my world so I can't just break it With all words, with all song It's impossible to say with my heart, with my soul But simply I will say three word I love you, I love you 연애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난 늘 공포소설만 썼다. 그런 것들이 내 머릿 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탓에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죽을 맛이었다. 애인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뭔가 매일 쓰는 공포 소설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이 분명 필요했다. 그래서 기분 전환용으로 떠올린 것은, 한번 연애 소설을 써보는게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연애소설을 쓰겠다고 했을때, 친구들의 반응은 이런 것들이었다. “연애도 안 해본 놈이...” “짝사랑 같은 걸로 쓰게?” 그렇다. 난 나이 23이 되도록 한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 했다. 이게 무엇이 부끄러운 것이냐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주변 녀석들은 다 연애를 하고 있거나, 혹은 한번씩 해봤음을 고려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난 주변 녀석들과 비슷한 기회를 얻었음에도 그걸 연애로 이어가지 못 했다. 그만큼 난 우유부단했고, 적극적이지 못 했다. 이처럼 자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연애 한번 못 해본 작자가 연애에 대해 운운한다는 것이 영 볼썽 사나운 꼴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연애라는 물건이... 뭐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것이든가. 옛날 장동민이 했던 그 캐릭터대로 생각해보면 대충 서로 우연히 만나서, 성격이 맞아 뭔가 대화가 잘 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뒤, 서로에게 자신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통해 소설을 위기 상황으로 이끌다가, 결국 생각해보니 우린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구나 해서 합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연애소설 아니겠냐고 난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연애소설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난 우선 캐릭터를 잡기로 했다. 대부분의 연애영화는 우선 남자는 훈남이어야 하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이 있다. 남자가 조금 떨어지는 캐릭터라도 여자는 완벽해야할 필요도 있고. 물론 여자가 좀 더 떨어지는 식의 캐릭터도 있지만, 어떤 드라마도 그렇다고 예쁘지 않은 여배우를 캐스팅 하지 않는다. 이런 강박관념에 반기를 들기로 작정한 작품이 아니라면 말이다. 일본 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를 다들 봤을지 모르겠다만, 거기 남자 주인공은 정말 못 생긴 사람이었다. 인상은 좋았지만, 무엇보다 진정 초라한 40대의 모습이었지.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캐릭터가 완벽한 종류인 탓도 있지만, 무슨 여신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외모가 떨어진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내가 만들 연애 소설은 이처럼 좀 떨어지는 남자 주인공과 완벽한 여자 주인공이 필요하다. 완벽한 여자 주인공의 모델은 분명 탤런트나 영화 배우의 이미지에서 얻는 것도 괜찮겠으나, 왠지 거기서 얻는 모델은 분명 현실성이 떨어질 것이다. 한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 소설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 제일 아름다운 사람을 꼽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은 후배들중 한명인 B를 골랐다. 그 사람은 아름답기로 소문났고,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게다가 성격이 조용 한지라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면도 가졌다. 아름답고 조용한 여자는 남자 입장에서 쓰는 연애 소설의 좋은 모델이 되지를 않던가.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소설의 모델로 삼기로 했다. 남자 주인공의 모델은 나자신으로 할까 하다가 역시 후배중 A라는 좋은 예가 있어서 그 녀석을 하기로 했다. 남자 주인공은 우유부단해서 어떤 라면을 먹을지 15분은 이것저것 만져보다 고르는 녀석이어야 하고, 너무도 진지한 탓에, 개그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역시 개그를 못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행동들 탓에 사람들에게는 그저 부실한 녀석정도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착한 사람이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비칠 정도의 열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 후배 녀석도 아직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난 그가 그럴 인간일 것일 듯 했다. 적어도 착한 사람인 것 까진 확실하니깐. 이제 그들에게 어떤 상황이 닥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만 하는데 난 그런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깐 데이트라도 한번 해보고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나마 친한 여자인 C에게 대충 영화 한편 보자고 해놓고, 그날 나름 각오하고 나갔다. 내겐 각오가 필요할 정도로 데이트라는 물건은 낯선 것이었다. 데이트의 과정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서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난 이 녀석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 녀석과 친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녀석이 워낙에 낙천적이고 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난 무신경하게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소리를 잘 하기 때문에 남들은 대개 내게 다가오는 것을 포기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 진심을 이해해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그런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 녀석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남자친구가 있었다가 얼마전 헤어졌다. 그 부분은 나 역시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내 친구인 탓이다. 둘은 나로 인해 서로 친해졌다가 애인까지 된 건데, 좋지 않게 헤어져서 굉장히 서먹서먹 해졌다. 남자 녀석 P가... 다른 여자랑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난 P한테 여러번 제대로 하라고 얘기했지만, 녀석이 사랑에 미친건지 내 말은 도통 듣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일이 난 것이다. 그 여자랑 키스하다가 내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에게 걸린 것이다. 요즘에도 서로 마주치면 제대로 인사도 하질 않는다. 나로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거기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을 할까 하면서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녀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불러줘서 고마웠어.” 응? 이게 무슨 얘길까 하고 나름 골똘히 고민하고 있자, 녀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엔... 그... 그것 때문에 제대로 사람들이랑 만나지도 못 하고...” 이 녀석은 그렇게 적극적이라서 뭔가 많이 알 것 같은 성격인데도, 의외로 순수하다. 충격이 컸을 것이다. “특히 남자들이랑은 말도 못 하겠는데...” 그랬구나. 응... 그런데... 나도 남자잖아. “그래도 넌 마음이 편하니깐...” 나도 남자... 라고 납득 하지 못 하다가, 하긴 난 연애대상은 아니니까 라고 납득했다. 난 이 녀석과 10년을 친구를 해도 그 동안에 단 한번도 연애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좀 슬픈 자신이지만, 그래도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눈치가 없는 성격이긴 해도, 단 한번도 우리 둘이 만나도 묘해진 적은 없었다. 물론 단 둘이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고, 데이트인 경우야 아예 없었어도. 그 날은 나도 그냥 데이트란게 뭔지 알고 싶었고, 카페에서는 그 녀석을 잘 위로해주고 서로 헤어졌다. 데이트란게 뭘 줄 알았으니 연애소설을 쓰면서 상황 몇 개 정도는 구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 연애소설의 성격상 일상적인 데이트는 중요한 상황이 되지 못 한다. 오히려 좀 더 우연적인게 소설에서는 먹히잖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데이트 경험은 이 정도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남자 후배 A와 여자 후배 B를 관찰해볼 때가 되었다. 남자 후배 A 녀석이야 왠지 모르게 진지한 성격이 맞아서 친한 탓에 많이 관찰할 필요는 없었느나, 여자 후배 B는 서로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인사하는 사이라 관찰이 필요했다. 관찰이라... 그런다고 무슨 미행같은 걸 하는 건 좀 미친 짓 같고, 그래서 우선은 마당발 같은 친구 녀석에게 필요한 정보라도 얻기로 했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밤에 술이나 먹을까 하고, 그 녀석은 너가 왠일로 술이냐... 뭐 나는 술은 못 하니깐... 여하튼 밤에 술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술을 먹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술이 제법 차서 알코올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할 때,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B는 어떤 얘같아?“ 녀석은 이미 눈이 50% 정도 풀려서 당황한 기색조차 내비지칠 않았다. 오히려, “아 B 말이지? 그 녀석은...” 가끔 녀석의 마당발 같은 성격이 부러워지는 것은 이럴때가 아닐까. 그 조용한 B와도 이렇게 쉽게 친해질 수 있다니. 내겐 그저 마법사가 쓰는 파이어볼처럼 먼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하튼 그 녀석의 입을 통해 나온 B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여주인공의 모든 것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것이였다. 굳이 B를 제대로 알지 않고도 이 정도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녀석에 의하면 B는 의외로 마니아틱한 구석이 있단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대화 수준이 무슨 셜록 홈즈나 뤼팽 정도가 아닌 손다이크 박사와 마이크 해머를 논하는 정도라고. 특히 하드 보일드 물을 좋아해서 앞에서 얘기했던 마이크 해머 시리즈, 필립 말로우 시리즈 같은 건 여러번 봤다고. 그 외에도 체스같은 것도 좋아해서 체스 동아리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음식은 많이 안 먹을 것으로 예상들 하지만, 실은 무진장 많이 먹는다. 남자가 먹는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되고, 영화는 의외로 휴 그랜트나 에단 호크류의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추리 소설을 좋아하듯 스릴러나 공포물을 자주 보는 것 같다고. 들은 말로는 그런 걸 좋아하는 이유가 감춰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갈 때 느끼는 쾌감 때문이였다나. 그리고 성격으로 보면 조용한 것 같고, 말을 아끼는 것 같아서 뭔가 감추는게 많을 것 같지만 친해지면 그런 건 알아서 드러내는 성격이라고. 뭔가 숨기는 걸 잘 하는 성격 같지는 않다고. 게다가 의외로 순진해서 어떤 얘기든 한 4번만 설득하면 넘어온다고. 사귀자는 것도 한 30분만 이런 저런 이유 잘 들어 설득하면 넘어올 것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조용한 탓에 그런 것 까지 아는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고. B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의외로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음식 많이 먹는 것까지 닮을 필요야 없겠으나, 추리 소설과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부분은 닮지 않았는가. 게다가 난 체스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B와 데이트를 한다면 의외로 얘기가 잘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 거야 아니지만. 이제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문제는 다 풀린 셈이다. 사실 소설은 캐릭터만 잡히면 상황은 연애 드라마들이 주로 사용하는 멋진 곳에서의 데이트, 그리고 다른 사람이 거의 없는 멋진 곳에서의 고백 같은 걸 사용할 생각이었다. 축구 경기장도 좋고, 대형 스크린에 사랑합니다 같은 말을 보여주는 것도 좋고.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친구 녀석이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표정을 감췄다. 그러자 갑자기 친구 녀석이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하하... 야 역시... 너라고 못 할 것 없으니깐, 한 번 열심히 해봐. 지금 애인도 없으니깐.” “엥? 너 뭔 소리야... 설마... 아니라고... 그냥 물어본 것... 아닐까? 아닐 지도 하하하하... 실은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거지... 사람들이 그런다. 술 취하면 머리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난 술을 먹기 시작하면 내가 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약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저 녀석이 50% 취했을 정도면 나는 한 80%는 취해있으리라는 것을. “그런가? 알았어... 자식아. 나 열심히 해볼게. 뭐 못 할게 뭐 있냐. 아... 이거 농담이야. 아하... 농담 아닐수도 있겠다. 나 열심히 할게. 연애 어려운 거냐.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그리고 난 다음날 아침 일어났다. 그 뒤의 일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뭔가 어제 실수를 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것이 참 두려웠다. 난 어제 술 먹은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녀석은 전화를 받긴 했는데 목소리가 영 좋지가 않았다.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나 오늘 수업 쨌다. 뭐 하자는 거냐.” “응? 그... 정도였냐?” “그럼... 원 녀석이 지치지를 않으니. 그러니깐 뭐 그렇게 술을 퍼먹어... 노래방에 가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랑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뭐 그런 노래만 줄창 불러대고... 피씨방을 가서 스타를 하자고 하질 않나... 휴 그래서 결국 5시에 끝났잖아... 뭐 나도 어느 정도 취해있어서 너랑 장단 맞춰줄 의지가 생긴 것 같다만... 여하튼 점심때 해장국이나 사라. 아 머리야...” “아... 미안타... 그럼 이따 점심 먹자.” “참...” “뭐?” “그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응?... 무슨 문제?” “어디서 모르는 척이냐. 여하튼 내가 얘기 잘 해줄테니깐 걱정 말아라. 난 좀 더 자야겠다. 너 좀 더 잘 거 아니면 이따가 나 1시에 좀 깨워줘. 그럼 난 잔다.” “어이... 야...” 끊어버렸다. 무슨 문제일까 잠시 생각해보다가, 내가 어제 B는 어떤 얘니... 하고 물어봤던 것이 빈 스크린에 영화 장면이 나오듯 머리 속에 펼쳐졌다. 아주 곤란하다. 오해가 생겨버렸다. 오해는 풀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 정도의 오해를 풀지 않았다가, 어느새 소문이 돌고 돌아서 B의 귀에까지 미치게 되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난 우선 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녀석은 받지를 않는다. 깊이 잠든 모양이다. 게다가 나도 잠이 오고... 오해는 좀 다음에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점심때 O를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댔다. 난 그 녀석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진짜라고. O는 알았다... 알았다... 하고 있는데, 무슨 연애의 신이 농간이라도 부려보는지, 해장국 집에 B가 유유히 들어왔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지도 못 한 채. O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 그러다 나를 확인하고는 움츠러든 듯, 예의 바른 인사. O가 B와 인사 한 뒤 나를 보고 한번 씩 웃는데, 아 곤란했다. 이 녀석 머릿 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한번 더 곤란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왠지 그 녀석이 그 뒤에 어떤 말을 하게 될지가 더 곤란해져서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이 참 빨리도 들었다. 그리고, “같이 먹을래?” B는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 망설이는 듯 했다. O가 날 보고 묻는다. “넌 괜찮겠냐?” 그래도 혼자 먹느니 같이 먹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난 억지로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B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혼자 먹는 것보다야... 같이 먹는 것이...” “뭐라냐, 자 이리로 와.” 그래서 셋이 밥을 먹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어색한 기운이 밥상 가득 흘렀다. B는 O 옆에 앉았고, 그래서 나와 B는 마주보는 식이 되었는데, 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3분, 갑자기 문자가 와서 봤더니. ‘야, 열심히 한다며.’ 역시 이 녀석은 그럴 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어색한 공기를 걷어낼 만큼의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결국 O가 답답했는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아 B, 너 추리 소설 좋아하지? 얘도 좋아해.” 그렇게 직접적으로 틀 필요까진 없었는데... B의 얼굴엔 왠지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추리 소설 얘기했다고. 그 정도로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화색이 돈 얼굴이 너무 예쁘질 않은가. 나도 모르게 한동안 넋을 놓고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큰 일이지만. “아... 그러세요?” “으...응.” “누구 좋아하는... 사람?” 참 예의상으로 물어보는 듯한 말이다. 나도 예의상 누구로 대답해야 하나 하다가... 매니아 기질이 발동하고 말았다. “레이몬드 챈들러...를 좋아합... 아니 하지. 응... 너...는...” “저...도요.” 다시 대화가 느려지고 있다. 그래도 솔직히 레이몬드 챈들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은 반갑다. 난 남들 앞에서 레이몬드 챈들러 얘기를 거의 하지 못 했다. 해리 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건 분명 확신 할 수 있지만 레이몬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우의 팬이 있을 거라는 건 확신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좀 화색이 돌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내 대화가 좀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래? 그럼 왠만한 건 다 봤겠네. <빅 슬립>이야...” “기본이죠.” 응? 이건 생각지도 못 했다. B가 갑자기 내 말에 치고 들다니. 게다가 이건 왠 자신만만한 말투인가... 내가 다 놀란다. “<하이 윈도우>” “그것도... 기본.” 아니 <하이 윈도우>까지는, 기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혹시 이 녀석은 나보다 더 레벨이 높은 추리 소설 매니아일지도 모른다. 이거 나는 재보지도 못 하겠다. 그러나 이미 배틀은 시작이었다. 왜 갑자기 배틀로 이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전 <리틀 시스터>가 더 좋던데요.” 아, 그건 안 봤는데... 제발 <리틀 시스터>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말아줘. 난 모른단 말이야. “뭔가 필립 말로우 시리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전 그 여자 동생의 정체는 잘 모르겠어요. 왜 나온건지... 결국 중요한 미스터리는 그 여배우들 쪽에 다 집중되어 있었잖아요.” 무슨 얘기? “응... 그렇지... 확실히 그래.” 난 대화의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한 소설이 기똥차게 머릿 속을 파고 들었다. <환상의 여인>. 엉터리 번역본으로 본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재밌었던 소설이다. “난 <환상의 여인>도 괜찮았는데...” “응? 그건 레이몬드 챈들러가 지은게 아니잖아요. 뭐 여하튼 굉장히 괜찮은 소설이죠. 3대 소설의 가치가 있어요. 그저 사건을 추리해 가고 있는 듯한 사람이 사건의 범인이라니요.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면 제일 기발한 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었죠.” “그렇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 될 줄이야... 정말 뒤통수 때리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나와서 참 다행이다. 정말 골때리는 반전이 아닐수가 없다. 난 이 소설을 보고 사람들이 <식스센스>에 열광할 참이면, 차라리 이 소설을 먼저 보지 그랬나 싶었다. 이 소설이 적어도 몇십년이 먼저 나오질 않았는가. 우린 그 뒤 한 30분 정도는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취미가 같다는 건 확실히 대화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이런 판국이 되자, 오히려 O가 겉돌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할 대화가 없어서 한번 셜록 홈즈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가 별 반응도 얻지 못 하고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O 없이 B와 단 둘이 대화 할 수 있을줄, 아까 B가 이 식당 안으로 걸어올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알았으랴. 가슴 속에서 뭔가 벅찬 것이 가득 차 올랐다. 여자랑 대화 한번 성공했다고 벅차 오르는 것은 참 오타쿠나 히키코모리, 마미야 형제 스럽다만 그럼에도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얼굴에 기분 좋은게 티가 잘 나는 성격인데, 분명 그 때도 그랬던 것이다. B는 날 잠시 보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추리 소설 동아리가 있던데... 이 학교에도.” 동아리? 사실 뭐 그런거야 이 대학교 들어올때부터 알고 있었다만은... 다음에 가입하지, 다음에 가입하지 하는 도중에 벌써 2학년이 되어 버렸는데, 이번 기회에 가입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건 B 때문에 가입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 아니야. 난 추리 소설을 주제로 한 대화를 매니아층과 함께 나눠보고 싶은 것 뿐이라고. 그럼... “아 그 동아리에 있는거야?” “예... 입학하자마자 가입했어요.” “아... 그래? 추리 소설 동아리가 있는 지는 아직도 몰랐네... 내가 정보가 별로 없어. 흠 괜찮겠네... 언제 하는데...” 결국 식당에서 나가 헤어질때는 내일 하는 동아리에 한번 나가겠다는 약속까지 덜컥 해버렸다. 멀어져가는 B를 보다가 O는 내게 말했다. “야... 너 의외로 열심히다.” 녀석... 한대 쳐줄까 싶다가, 그래도 일이 어그러지지는 않았으니 이 녀석의 공도 있겠다 싶어서 한번 웃어줬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다시 생각했다. B의 웃음을... 참 예쁘질 않은가. 간만에 원더스의 <That thing you do>가 흥얼거려지고, 나도 모르게 가벼운 부기우기를 추고 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난 연애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걸. 그래, 내 처음 목적은 연애 소설이었다. 내가 만약에... 백분지 일의 가능성으로 B와 어떻게... 얼레리 꼴레리 된다면 갈길을 잃은 캐릭터 A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 A를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통해 녀석의 캐릭터도 한번 정도 제대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래 난 소설을 쓰고 있다. 내가 직접 연애를... 그건 무슨 소리냐. 어차피 그렇게 될 일도 없을 거라고. 연애가 그렇게 쉬운거면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의 실패를 거칠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난 마음을 다잡았다. 여하튼 A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나도 오후 수업이 없고 녀석도 없으니 천천히 말이다. 다음날 점심, A녀석이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정문 앞에 서 있는데, 멀리서 뭔가 아주 음울해 보이는 형국을 한 녀석이 걸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걸음과 평범한 옷을 입고 있음에도 음울함이 불이 활활 타오르듯 높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난 그래서 약간 놀라야 했는데, 가까이에 온 것은 A였다. 평소에 진지해서 재미가 없는 탓에 역시 여러 사람들과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음울한 기운을 풍길 정도로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지금 이 음울한 기운은 대체 뭐란 말인가. 녀석이 힘없이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형, 오랜만입니다.” 목소리도 힘이 쫙 풀린 듯 하다. 이 음울한 기운이 가득한 녀석을 어찌 해야 좋을지. 흠... 삼계탕 같은 건 어떨까. 뭔가 원기를 채워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라 녀석을 삼계탕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기서는 건강주로 인삼주를 주니깐, 술도 약간 들어갈 수 있겠고. “너... 뭐 문제 있냐?” 테이블을 잡고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물어봤다. “예... 있습니다.” 녀석, 역시 직설적이다. 좀 우회해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면 좋으련만. “뭐가 문젠데?” “외로워요.” 역시... 너도 솔로... “게다가 누굴 좋아하게 됐어요. B 아시죠... 우리 과인데.” “응?” 얼씨구... 연애 소설의 신이 납시기라도 한 기분이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가 요즘 연애 소설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너의 수월한 창작을 위해 아예 상황을 만들어주마, 허허허. “그...그럼 알지.” 내가 목이 메인채로 대답했다. 내가 듣기에도 목소리가 편칠 않아서 녀석이 눈치라도 챌까 걱정이 된다.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는데, 물론 얼굴을 보고 반한 거지만요.” “그래?” “잠잘 때 눈을 감으면 얼굴이 떠올라서 이젠 밤에 잠도 못 자고 있습니다. 눈을 감기가 싫어져서요.” “응? 눈을 감으면 보이니깐 눈 감기가 싫어진다는 건 뭔가... 이상하잖아.” “알잖아요... 괴로워요. 이렇게 모습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말 한마디 붙일 수 없다는게.” 역시 녀석은 무척 진지하다. 녀석은 그 진지함으로 인해 여자들과의 대화에서 굉장한 핀치에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녀석은 가끔 개그를 준비해 가기도 하는데, 결국 웃기다가 자기 혼자 웃고 끝나는 식이 많았다. 자긴 재밌어서 말도 제대로 못 잇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재미 없어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은 나도 많았다. 그거 참 큰 일이지. 녀석은 그런 걸 겁내고 있고, 또한 말을 붙이면 뭔가 상황이 어색해 질 것도 겁내고 있다. 자기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 할 거라는거. 녀석도 그런 탓에 여자들에게 많이 채였고, 그래서 B처럼 진짜 예쁜 여자는 말도 제대로 안 받아주리라고 겁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내가 쓰려는 소설처럼 되가고 있었다. 연애의 신이 아닌 연애‘소설’의 신이 강림하신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난 갈등이 생겼다. 물론 연애 소설의 완결을 위해 어제 O가 내게 설명해주었듯이, 실은 B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이 녀석도 추리소설 동아리에 같이 데려가든지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순조로운 첫만남이 가능해 지겠지. 하지만 좌뇌도 우뇌도 힘을 합쳐 넌 그렇게 해야만 해 라고 강조하는 가운데서도, 마음이 왠지 그것을 쉽게 허락칠 않았다. 난 머리로도 납득을 시켜야 했다. A는 너보다 훨씬 오래 B를 좋아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너가 그 기회를 채가겠다고? 난 아직...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어. 단지...그냥 자꾸 마음 한 구석이 거석했다. 돌이라도 들어앉은 듯. 뭔가 그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막고 있다. 수도 꼭지의 구멍이 굳게 막혀 있는 듯. “흠...” “전 어떻게 해야 될지... 참.” “B도 추리 소설 좋아하드라... 참.” “예?” “오늘 밤에 동아리 모임 있댔는데, 추리 소설 동아리.” “진짜요?” “응... 같이 가자...” “아니... 저는 그런 거 잘...” “일단 가서 뭐... 한번 잘 해보라고... 뭐 내가 아는 건 그거 밖에 없으니깐... 추리 소설이라도 앞으로 미친 듯이 보든지. 그러면 대화 주제 하나는 생기잖아.” “그...럴까요... 그래도 여전히 대화가...” “뭐... 그건 나도 상담 못 해줄 문제다. 그건 좀 더 능숙한 얘들한테 물어봐.” “예...” “가는거지?” “흠... 좀만 더 생각을...” “아이썅... 뭐 이렇게 굼떠... 밤에 잠도 못 자게 괴롭다는 놈이 뭘 이렇게 망설여... 그냥 기회가 왔으면 냅다 잡고 덤벼들어!” 내가 소리를 질렀든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라도 난 모양이라고. 난 몸을 움츠렸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화가 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건 내게도 기회 일 수 있는데. 나란 놈은... 참. 그렇게 연애에 대이고도 이렇게 기회가 오니 약간의 망설임만 거치고 잡을 수 있는 놈이든가. 그런 씁쓸함이 날 열받게 만든 거겠지. 결국 A는 가기로 했다. 그렇게 사자후를 내지른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 과정은 금방 넘어가고 싶을 뿐이다. 난 추리 소설 동아리에 가서도 A와 B를 엮는데 전념했다. 물론 그건 내가 잘 하는 분야가 아니었지만, 추리 소설 동아리 사람들과 몇 번의 만남후 친해진 뒤 그들에게도 A와 B가 잘 되도록 하자고 부탁하는게 가능해졌다. 난 여전히 오랫동안 B를 좋아했다는, A의 진심에 무게를 걸고 있었다. A와 B는 쉽게 친해질 기색이 처음에는 안 보였다만... 그래도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B역시 A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착한 사람이 이성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품는다면 그건 언젠가는 이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 때 생기고 있었다. 내 마음 한구석의 씁쓸함은 여전했다. 난 분명 B라는 굉장한 사람이랑 잘 될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냥 O와 B의 관계처럼 친한 선후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르지 않는가. 내가 거기서 얼마나 잘 했으면 됐을지도. 그날밤... 그러니깐 B와 밥을 먹었던 날 밤은 B가 원하는 남자가 되줄 수도 있다고 혼자 되뇌기도 했다, 한순간이었지만. 하지만 이미 난 그 기회를 자의로 놓아버렸고, 그것을 A에게 넘겼다. 둘은 그리고 이미 애인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A에 의해, 그리고 동아리원들의 효과적인 헬프에 의해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건 보기 좋은 모습이기도 했다. 그 뒤에 내 생활이 달라진 것은 C가 가끔씩 단둘이 영화를 보자거나 저녁을 먹자거나 하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만나자고 할때도 있긴 했다만, C가 만나자고 할때가 더 많았다. 내겐 참 신기한 일이었다. 좀 더 의아했던 건, 한 3번쯤 그렇게 만났나... C가 슬슬 옷을 차려 입기 시작했다. 난 그때도 대충 카파 츄리닝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동네 양아치처럼 나갔다가, C가 화를 냈다. 나야 그냥 편히 보자는 자리인줄 알았지... 라고 변명은 해뒀지만, 왜 화를 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조금씩 C가 날 물끄러미 보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신기한 일 중 하나였다. 이런걸 묘하다고 하던가. 그래 참 묘한 일들이었다. 난 A와 B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단 둘이 만나는 경우가 잦아짐에 따라, A는 내게 자주 데이트를 보고 했고, 난 거기서 영감을 얻어 약간의 창작하에 그것을 원고지로 옮겼다. 괜찮은 연애 소설이 완성 되어 가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연애‘소설’의 신이 나를 대견해 하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하하하... 나의 암시를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소화해 내는 구나 라고. 하지만 여기서 하나더 B와 나도 친해졌다. 일주일에 2번씩 사람이 많지 않은 동아리에서 두달동안 계속 만난다는 건 친해지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라도 됐나 보다. 여자들이랑도 잘 못 친해지는 성격이 B랑 친해졌다. 성격이 맞는 탓도 있겠지만. 물론 A를 밀어주는 식이므로 난 어느 정도 정도를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게 비슷한데다가, 의외로 성격도 맞아서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건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얘기가 꺼내져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건 참 큰 강점이다. 굳이 서로에게 할 말이 없어도 같이 있는게 편안하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친해지기도 했고, B는 확실히 마음 속에 있는 걸 쉽게 감추는 성격은 아니였다. A와 내가 추리 소설 동아리에 들고 한달뒤 B는 나랑 우연히 만났다. 그것도 학교 어딘가 벤치 앞에서, 손에는 이제 막 마시려던 커피를 들고 말이다. 우린 벤치에 앉았다. 그냥 일상적인 얘기좀 몇 개 하다가... 난 이젠 슬슬 대화의 주제를 A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A는 좀 잘 해주냐?” “아... 걔 나 좋아하는거 맞죠?” 직설적이잖아. 커피가 뜨거움에도 한꺼번에 들이킬뻔 했다. “야... 뭐 그걸 그렇게 한번에... 그렇게 말하면... 아 뜨거워...” B가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오빠는 확실히 말보단 몸으로 웃기는 체질인가봐요.” “야... 너 이씨.” “여하튼, A는... 흠.” “뭐야? 흠...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얘가 이상해?” “아... 그런게 아니잖아요.” “아 그래?” “이렇게 오빠한테 걔가 날 좋아하는게 맞는지 물어봐야 될 정도로... 진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응? 뭔 소리래 그건?” “뭔가... 난 널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식의 인상인데.” “응? 그럴 리가... 내가 보기엔 분명 그 녀석은...” “오빠는 눈치가 없잖아요. 이번에 G선배 깨진 것도 모르고 그 소리 하다가... 봉변 당하고.” 아... 그랬지. G는 추리 소설 동아리에 있는 3학년인데... 복학 하고 두달 사귀던 애인이랑 안 좋게 깨졌다. 그런데 난 동아리 안에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걸 혼자 모르고 동아리 모임때 G선배가 술 먹으러 가자는 걸... 아니 형님 오늘은 애인 보러 안 가시게요... 라고 했다가... G선배가 참았던 눈물 터뜨리고 모임은 난장판이 됐다. B 녀석... 그런걸 끄집어내다니. “아...알았다고. 나 눈치 없어. 여하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 안 좋아한다고 치자. 그러면 왜 A 녀석은 아직도 너한테 그렇게 대쉬하는거지?” “아마도... 걔도 참 알기 쉬운 성격인데... 그런거 아니겠어요... 남자의 자존심 이런거. 자긴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내다... 같은 거.” “그런 녀석이었든가? 그래도 그 녀석 답게 그거 진지하네.” “그렇죠... 참 진지해서 사실 재미가 없는 면도 좀 있어요. 게다가 오빠보다 인내심이 없어요. 한번 놀리기만 해도 뭐... 제대로 삐지니... 사람들이 자기를 단 한번도 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응?... 나도 삐지기야 잘...” “그래도 오빠는 놀리는거에 받아쳐줄 레벨이야 되지... A는 그것조차...” A 녀석 최악의 남자잖아. 이건 무엇인가. “아 맞다, 이번에 꽤 볼만한 스릴러 영화 하나 나왔든데... 그거 보러 안 갈래요? 평도 괜찮고...” “응? A랑 보러 안 가?” “A요? 제대로 알지도 못 하는 얘랑 뭘 보러 가요? 영화 끝나고 영화에 대해 뭔 얘기만 하려고 하면... 매일 나오는 말이 무서우니... 재밌는 것 같았으니... 이런 얘기 뿐인데... 그냥 같이 가요.” 하긴 그렇지 B는 스릴러 매니아였지. 나도 그 기분 알 것 같다. 스릴러를 좋아하니깐 스릴러 영화를 봐야 되는데 C랑 영화를 보러 가면 C가 좋아하는 아담 샌들러 표 코미디를 보러 가야 하니 당혹스러웠다. 아담 샌들러 코미디는 유치한데다가 지저분하고 거기에다가 재미도 없었다. 저런걸 왜 보냐고,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가 C가 또 화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바에야 추리 소설과 스릴러 매니아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차라리 낫겠지. “그래... 가자. 언제 하는데?” 밤에 돌아와서 한글 2005를 화면에 띄워놓고 생각했다. A는 B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난 믿고 있었다. 녀석이 그렇게 애절하게 말하기도 했고, 그런데 B가 보기엔 그게 아니다. 그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이 연애 소설은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건가. A가 B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 짐에 따라 쓸 의지가 팍팍 쏟았는데, 왠지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니깐 원고지 다음을 채우기가 껄끄러워 졌다. 관두고, 방 창문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C였다. “내일 영화 보러 가자. 아담 샌들러 영화 들어왔어.” 아... 내일. “내일 약속 있는데?” “응? 누구랑?” “아... 후배랑.” “남자? 여자?” “여잔데...” “누구?” “아... 오늘 왜 이리 꼬치꼬치 묻냐... 그것까지 알아서 뭐 하게...” “알아서 뭐 하냐니... 누군데?” “어허 나 원참... B. 알잖아 누군지.” “B? B랑 왜... 요즘 친해졌다더니 영화까지 같이 보는거야?” “말투 참... 칼같네.” “너 그러는거 아니야.” “뭐?” “남자가 그렇게 우유부단한 거 아니라고.” “뭔 소리야... 우유부단이라니. 그 말뜻은... 뭐야?” “난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참 너처럼 눈치 없는 얘랑은... 관두자, 끊어.” “야! 잠깐만... 야!” 전화가 끊겼다. 뭔가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지고 있다. 눈치 없는 얘라니... 내가 뭘 눈치 못 챘다는 거야. 한 1시간을 생각하자 답이 나왔다. 왜 내가 츄리닝 차림으로 편한 동네 모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약속 장소에 나갔을때 C가 화를 냈는지 생각해봐야 했다. C가 나를... 아 참 이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인제 알다니. 난 다시 전화 해야 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애대상이 안 될게 분명해보이던 여자가 왜 갑자기 내가 연애대상이 되어버린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거라도 물어봐야 할텐데, 이쪽에서 먼저 화를 내고 길길 뛰고 있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안절부절이었다. 먼저 나도 C를 좋아하는지 생각을 해봐야 했는데, 그니깐 사랑하는지의 문제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어째야 되나... 어째야 되나 침대에 누워서 고민하다가, 그냥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C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은 꺼져 있었다. 순간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고민해 보았다만, 이런 일 하나에 큰 일이 생기면 세상에는 단 한명도 남아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뒀다. 그날 오후 정문에서 B를 만나서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갔다. B도 편한 차림, 나도 편한 차림이었다. 어제 그 일 이후로 왠지 편한 차림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B도 편한 차림이니 뭐. 영화는 과연 사람들의 평이 좋을만한 작품이었다. 스릴러는 구성이 생명 아닌가. 정말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을 맞추어 가는 듯한 완벽한 구성이 함께 하는 영화는 배우의 어설픈 연기나 저예산의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충분히 영화를 성공 시킬 수 있다. <메멘토>가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이 영화 역시 뛰어난 스토리. 완벽한 구성. 그리고 사람들을 한순간 멍하게 만들었다가 뒤통수 맞았다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반전으로 저예산의 어려움을 극복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둘은 그런 좋은 영화를 봤다는 기쁨에 영화관 주변에 있는 제일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그런 얘기를 해댔다. 한 몇 시간 정도. 어젯 밤부터 나를 짓누르던 C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시간이 계속 되면 좋겠다. B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난 참 즐거웠는데... B를 집에 데려다 주는 시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에 와서 까지 나름 즐거워 하다가 밤에 C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로 나오라고. 학교 약속한 장소로 갔더니, 츄리닝 차림의 C가 서있었다. 저 표정과 저 모습은... 마치 내가 옛날에 봤던 음울한 포스의 A같았다. 비라도 쏟아지면 그 효과가 배가 될 듯 싶다. 그래서 하늘을 봤더니 달이 보이질 않았다. 안 된다. 비는 오지 말아라. “재밌었어? 오늘 영화 보고 왔겠네?” 윽, 완전히 말투가 날 찌르고 있다. 독기를 제대로 품은 것 같다. “나랑 영화 보는 건 그 정도로 재미가 없었을까?” “야... 그건 아니지... 난 그저.” “어떻게 그 정도로 모르지? 넌 참 눈치 하나는 최악이네.” “아니... 어제 알기는...” “어제 알아서 뭐해!” C는 울 기세다. 게다가... 이런 하늘도 울 기세다. 녀석이 심성이 여린가. 갑자기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C는 그러자 제대로 울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난 추워 죽겠는데, C는 들어갈 기색도 없다. “이러지 말고 그냥 들어가자... 응.” “넌 지금도 마음이 편한가 보지?” 마음이 편하긴... 부담 되 죽겠다. 난 한때는 C의 눈엔 내가 남자로 안 보이나 보다, 하고 약간 아쉬웠던 적은 있어도 C를 애인으로서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런 적은 없고, 사실 지금은 더더욱 안 그런데, 갑자기 이러니 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 속에서 난 좀 더 생각해 보았고, 결국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제대로 얘기해 주는 수 밖에 없다고. 이게 제일 지혜로운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차가운 빗줄기가 내 판단 능력을 흐렸을 수도 있다. “내 마음? 조금도 안 편해... 그거 알아?” “...” “넌 친구야.” “뭐?” “물론 한때는 너가 날 연애 대상으로 생각해 주지 않을 거라는게 약간 서글플때도 있었어. 하지만 그건 연애감정이 아니야.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서글픔이었지. 그리고 그 동안 만나는 것도 난... 연애 감정이 아니였어. 친구...라서 만난거야... 그러니깐.” “그래... 친구라서...” “그나저나 말이야.” 지금이다. 왜 내가 좋아졌는지 물어볼 타이밍이 말이다. “왜 내가 좋아진거야?” “뭐?” “난 그냥 마음이 편하다고 했잖아. 난 그래서 너가 날 좋아하게 될 줄은...” “...마음이 편해.” “그래서?” “그래도, 좋은 거라고. 언제든 같이 있어도 싫지 않으니깐!” 확실히 이해가 된 건 아니여도, 같이 있을때 마음이 편해서 좋다라... 그렇게 따지면 나도 B랑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언제든 같이 있어도 괜찮을 성 싶고... 여하튼 C가 한 고백은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안 돼... 미안하다만, 흠... 포기...” “뭐, 포기라고? 넌 사람 마음 접는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사람한테 좋아하는 건 필사적이라고... 그런데 그걸 그냥 포기 한 마디로 무마해 보겠다고! 이 나쁜 새끼야!” 이런, 내가 실수라도 한 것 같다. 이렇게 말 선택을 잘 해야 하나. 이 녀석이 이렇게 감정적인 녀석이든가. 난 몰랐는데. 여하튼 무슨 말이든 더 해야 한다. “...난 말이다...” “어 그래... 뭐든 말 해 보시지!” “그러니깐...” “무슨 말을 할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 “난 B를 좋아한단 말이다!” 뭐... 내가? 역시 비가 문제였다. 이렇게 차가운 비가 쉴새없이 쏟아져서 뇌까지도 제 기능을 못 하는거다. 뇌도 따듯한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쏟아졌고, 주워 담기에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말은 의외로 C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C는 계속 울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무슨 말은 하지 않았다. 계속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누구랑... 술 좀 먹자... 그래... 거기로 나와. 하고는 끊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이 등신아... 앞으로 나한테 전화 걸 생각도 하지마!” 그리고는 뛰어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난 한동안 감각이 없었다. 내가 B를 좋아한다고 얘기해 버리다니.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왠지 현실이 되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원래 현실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은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그걸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C랑 이 한바탕 난리를 치는 순간에도 분명 그 이름과 얼굴이 떠오를 수 있었던 건 뭘까. 그런 생각을 했다. 여하튼 무척 추웠다. 난 이 지독한 빗 속에서 좀 더 절망적인 C보다도 오히려 몇 분을 더 있는 셈이였다. 겨우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이불 속에 파고 들었다만, 몸은 계속 으슬으슬 댔다. 내일 수업을 쨀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날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점심 때즈음, A가 집에 찾아왔다. 녀석은 뭔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저번에 B의 말을 들어놓은 것도 있고 해서 대충 녀석의 행동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녀석이 할 말도. “제가 B를 좋아하는 건지 요즘에는 잘 모르겠어요.” “흠... 그러냐.” “옛날엔 분명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만나보니 잘...” “흠...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예...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단정을...” 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힘차게. “이 우유부단한 새끼야! 너가 좋아하는 거 아닌건 옛날부터 알아봤어. 이렇게 부딪히니깐 확실해지잖아. 좋아하는 거 아닌 거 확실히 확인 됐으면, 얼른 물러놔. 너 때문에 지금 정말 B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안 올수도 있는거야. 알아?” A는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워낙에 진지한 녀석이라 이런 진지한 반응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역시...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얼른 전 이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하겠네요! 그 사람은 누가 될지 참 궁금합니다!” 글쎄 누가 될까. B에게 고백한 것은 그날밤이었다. B가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죽을 들고 온 B는 침대옆에서 30분 정도 말 없이 날 보고 있었고, 난 역시 물끄러미 B를 보면서 얘기했다. 아픈 탓도 있지만 목소리는 참 애절하게 들렸을 것이다. “어제 날 좋아한다던... 여자한테 그건 안 된다고 했어.” “왜요?” “어...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요?” B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화색이 돈다. 미소를 짓고 있다. “난 지금까지 여자랑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내겐 굉장히 좋은 기회 일 수도 있는데... 쩝 그걸 과감히 안 받았지. 참 간절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아... 낮간지러워.” “누굴까요?” “흠... 그건... 흠! 너가... 아닐까나.” B는 별로 놀란 듯한 표정을 안 보인다. B는 눈치가 좋으니깐 알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지. 내가 궁금했던 건 B의 마음이였다. 나한테는 잘 안 보이니깐 남의 마음이. 그래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시간이 꽤 길었다. B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참. “좋아요.” 그 대답이 나오자 난 침대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얼굴도 벌개지고, 여자에게 고백해서 좋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인생에서 말이다. 아무리 아파도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날 가치가 있는 일 아닌가. 춤이라도 출까 했지만... 그건 좀 오버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B는 그저 웃고 있었다. 이럴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난 B와 사귀고 있다. 아직은 두 달 정도 되었든가. 이쯤에서 A와 C의 이야기를 해야 할 듯 싶다. A는 그 뒤 애인을 만났던가. A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다만 녀석은 최악의 남자다. 진지한대다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속좁은 남자라니. 그런 남자가 애인을 사귀기는 참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애인이 생겼다. 그건 나나 B 둘다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러나 A와 그 애인을 만나고 나서 우린 이해했다. A의 애인은 거의 부처라고 해도 될 인물이었다. 속이 무진장 넓고, A가 하는 짓을 부처님 손바닥처럼 꽤뚫어 보니, A는 어느새부터 이 여자에게 잡혀살게 되었던 모양이다. 여자는 A가 하는 짓을 그저 귀여워 하고. C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C는 A만큼 최악은 아니니 애초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나한테 차인 날(내가 고백을 찼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전화했던 사람은 아마도 어떤 남자였던 모양인데, 결국 그 남자와 사귀는 모양이다. 나와의 우정의 회복은 더뎠다만, 여하튼 결국 회복은 되었다. 일단 자기 옆에 애인이 있으니, 마음이 안정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얘기는 분명 내 연애소설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이 연애 소설이었다. A와 B가 주인공인. 한동안은 순조롭게 쓰여졌다가, B와 진짜 연애를 시작하게 된 순간부터 이 소설은 계속 스탑이었다. 그걸 B와 사귀고 난 두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한번 열어보게 되었다. 정말 밤마다 잠도 못 자는게 단지 공포소설 탓이었을까. 지금도 B와 함께 공포영화도 보고 그래도 난 잠만 잘 잔다. 결국 정신이 피폐해진 이유는 외로워서 였을 거라고 지금은 믿고 있다. 내게 필요한건 연애 소설이 아니였다. 진짜 연애였지. 그러므로 지금 이 완성되지 못한 연애소설은 내게 필요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열어보고 그래, 이 덕에 B와 연애를 시작했지 하는 추억용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단지 가끔 연애 소설의 신이 화를 내는 소리는 들린다.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완벽한 소재를 줬는데도 그걸 등져? 하지만 연애의 신은 웃고 있으니 됐다.
그저 좋다, 벚꽃 날리는 봄은. 이 곡은 진짜 별 생각 없이 쳤다. 녹음 했을때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무의식중에 친것처럼.
sakura.mp3 ![]() 현재에서 만족하는 인간은... 대개 없다. 더 원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그 하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물론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감히 신의 위치에 올라설려고 발악하는 인간들이 꼴좋게 당했다는 식이지만... 신과 무관하게 생각해봤을때 그건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화를 불러왔다고 볼수 있다. <메트로폴리스>는 욕망으로 치닫던 인간들이 몰락해 가는 얘기다. 만화 전편에서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만화는 말하고 있다. 문명의 극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에서 인간은 몰락하리라. 나도 그 말은 동의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처음에는 얼마 안 되는 단점들을 가지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악을 배운다. 첫번째로 차별을 들수 있다. 이 만화에서도 문제가 되는 로봇에 대한 차별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한국 가부장제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가지는 여자에 대한 태도, 그리고 순혈주의 사람들이 가지는 혼혈인에 대한 태도. 백인이 흑인에게 가지는 태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혼혈 아이와 놀지 말라고 배운다. 물론 그런 부모가 쟤를 놀리고 때려... 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만,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은 그 아이를 왕따시킨다. 인간의 법칙이다. 그리고 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은 더 큰 걸 꿈꾼다. 이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남들 위를 밟고 올라가는 일. 모두가 내 발 밑에 있다는건 얼마나 경쾌한 일인가. 레드 공은 지명수배중인 과학자에게 죽은 자기 딸을 닮은 초인을 만들것을 명한다. 이는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부시도 아마 비슷한 꿈을 꿀 것이다. 그에게 이 만화를 보여주면 좋을텐데. 만화는 <I can`t stop loving you>가 흐르는 가운데, 더 없이 높은 탑 '지그라트'가 무너지면서 끝이 난다. 욕망을 가진 권력자들은 이런 가운데 모두 제거된다. 로봇들은 거리에 자유롭게 나오게 되고, 살아남은 주인공과 로봇들에게는 안정된 미래가 약속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난 잘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난 이런 측면으로 이 작품에 접근했지만... 영화적으로 보면 작품은 정말 멋지다. 장면 하나하나가 예술인데다가, 음악 선택 역시 정말 좋다. 꼭 보기를 권한다. <I can't stop loving you>가 나오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질수 밖에 없다. ![]() 최근 알 파치노가 <오션스 서틴>에 나왔다. 아... 그는 단 한번의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오션스 일당에게 깨갱 거리면서 무너졌다. 늘 화면을 장악하는 포스를 보여줬던 그는... 그냥 비열하기만 한 루저 같았다. 그건 역할 상의 문제일 것이다. 알 파치노가 나온 코미디(별로 없기도 하지만)중에 성공한게 얼마나 되나...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알 파치노는 애초에 밝은 역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 될 수도 있다. 그는 <프랭키와 쟈니>에서 대단히 부드러운 역으로 나오는데, 오히려 개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스카페이스>, 그리고 대부 시리즈에서 그는 정말 제대로 빛난다. 난 그 영화들을 보면 정말 알 파치노가 저런 사람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그 정도는 그는 역에 녹아든다. 알 파치노의 얼굴을 가진 토니 몬타나, 그리고 알 파치노의 얼굴을 가진 마이클 꼴레오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그는 뭔가 결핍을 가진, 그리고 보통 직장인이 아닌 삐뚤어진 역을 맡을때 정말 멋지다. 물론 그건 그의 한계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덕에 삐뚤어진 역에서 어떤 배우보다(심지어는 로버트 드 니로보다도) 인상적인 모습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뜨거운 오후>는 그런 알 파치노 영화 중 하나다. 알 파치노는 여기서 한번 더 빛난다. 그가 맡은 소니는 동성애자이고 애인이 성전환 수술을 원해서 그 비용을 구하기 위해 은행을 턴다. 하지만 그는 실상 꽤 순진한 사람이다. 은행을 털려고 했더니 막 수금을 해서 돈도 얼마 없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폼으로 수표 책을 태우다가 연기 때문에 경찰과 FBI까지 밀려들고. 그와 그의 동료 샐은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죽이기를 BB탄 총으로 과녁 쓰러뜨리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위협을 하지만 실상 한명도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천식에 걸린 경비원을 내보내 주고... 은행 지배인이 당뇨 증세를 나타내자 의사를 불러온다. 그렇게 은행 직원들과도 오히려 잘 지내는 소니와 샐... 하지만 결국 그들이 받게 된것은 샐의 죽음, 그리고 소니의 체포였다. 그것은 일종의 사기였다. FBI는 그들이 외국으로 나가길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도의 작전으로 그들을 우선 공항까지 데려와 안심시킨 뒤, 샐을 사살하고 소니를 체포한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수갑에 묶인채 사람들을 바라보는 알 파치노의 허무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방금전까지 굉장히 살가웠던 은행 직원들은 막상 소니가 체포되고 자신들의 안전이 확인되자 체포되는 소니를 돌아보지조차 않는다. 소니는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순진하고, 얼마나 사람을 믿었던가 말이다.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였나 하는 걸. 그게 표정에 다 보여서 보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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